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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설-개간- 유실 - 방치까지

지뢰 사고의 공식

지뢰 사고는 아무 이유 없이 특정 구역에 쏠리지 않습니다. 거기엔 반드시 맥락이 존재하는 법입니다.

 

>>  이런 곳에 지뢰가 숨어 있다

 

무엇보다 과거 남방 한계선 근처이거나 군사 전략적 거점이어서 지뢰가 많이 설치된 곳일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런 장소일수록 버섯과 약초 등이 풍부해 채취하는 사람들의 은밀한 동선과 겹치게 됩니다. 또한 지뢰 지대 부근에는 이상하리 만큼 인삼밭이 많은데, 일부는 불법 개간의 결과물입니다. 플라스틱 대인 지뢰를 대량 살포한 곳에, 해당 지역의 경사도가 급하고 물길까지 흐르면 유실 위험은 증폭됩니다.

다소 거칠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펀치볼 지뢰 사고의 맥락을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표현해 봤습니다.

 

지뢰 집중 매설 역사 + 지형적 특성 +

불법 개간과 산나물 채취 + 군 당국의 방치 = 지뢰 사고 위험

 

가칠봉과 땅굴 아랫 자락에서 반세기가 넘게 계속된 지뢰 사고의 비극은 이 지뢰 위험 공식의 변수가 한꺼번에 적용되어 일어난 일입니다.

 

제4땅굴 :

숨겨둔 지뢰가 불러온 죽음

 

제4땅굴의 밑자락에는 1990년대 사고 지점 3곳이 골짜기를 따라 연이어 지도상에 찍혀 있습니다. A 지점에서는 41살 삼촌과 12살 조카가 토끼를 잡으러 들어갔다가 함께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뢰를 먼저 밟은 조카를 구하려는 삼촌의 발 밑에서도 또다른 지뢰가 터졌습니다. 가칠봉 밑 F지점은 사망한 삼촌의 남동생이 별도의 지뢰 사고로 다리를 잃은 지점입니다. 형제의 어머니는 펀치볼 남서쪽 야산에서 역시 지뢰를 밟았습니다. 3대에 걸친 비극이었습니다.

 B, C, E 지점 역시 모두 90년대 초반에서 중반 사이 민간인이 지뢰로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은 위치입니다. 마을 아낙네 2명이 함께 산나물을 캐다가 동시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1명은 숨지고, 다른 1명은 마을 주민들이 장례식을 치르려던 사흘 뒤에야 중상을 입은 채 기적적으로 발견됐습니다.

약초를 캐러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한 또 다른 50대 남성의 시신은 사고를 당한 뒤 며칠 뒤에야 군 헬기가 가까스로 발견했습니다.

정확한 사실 관계를 모두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사고 당사자와 가족들은 대부분 사고 당시 주변에 지뢰 표시는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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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땅굴이 발견된 것은 1990년 3월, 주민들은 땅굴이 발견되기 전에는 아래편 숲이 수시로 나무를 하러 들어가던 안전한 곳이었으며 지뢰는 없었다고 증언합니다.

하지만 땅굴 발견 뒤에 북한군의 침투에 대비해 군부대가 지뢰를 집중 매설했고, 특히 발목지뢰로 불리우는 M14 대인 지뢰가 대량으로 뿌려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지뢰 매설 사실과 장소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숲속에 나물 채취나 사냥, 고철을 주으러 들어간 주민들이 90년대 중반에 끊임없이 사고를 당했습니다. 실제로 땅굴 밑에서 일어난 지뢰 사고는 모두 90년대 이후에 발생했습니다.

 

땅굴 발견 이후

지뢰사고 연이어 발생

가칠봉 :

길 곳곳에 지뢰 매설

우리는 땅굴 밑 뿐 아니라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마지막 봉우리인 가칠봉 자락 밑에 만들어진 또 다른 지뢰 사고 라인도 주목합니다. 산 경사면의 길을 따라 9부능선에서 3부능선까지 3~4개의 사고 지점(L ~ N)이 선을 따라 연결됩니다.

지뢰는 적의 이동을 차단하기 위해 전방의 도로나 산길을 따라 주변의 우회로에 집중 매설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숲속 산길 주변과 골짜기를 따라 지뢰 사고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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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 사고 후 5개월

나무 위 표지판 하나가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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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사진과 같이 또다른 지뢰 사고 지점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가칠봉 산자락과 땅굴 밑 산악지대에 인접한 인삼밭이 그곳입니다.

올해 일어난 4월과 5월 지뢰 사고는 모두 인삼밭 부근에서 일어났습니다. D 지점과 H 지점이 그곳입니다. 최근까지 일어나고 있는 지뢰 사고의 전형적인 유형이 확인됩니다.

바로 밭과 숲의 경계지점입니다. 5월 22일에 지뢰 사고를 당한 김 모씨는 외지인으로 밭 경계를 걸어가면서 나물을 캐다가 지뢰를 밟았습니다. 32년 전에도 주민이 땔감을 구하러 들어가다가 화를 당한 장소(I 지점) 바로 옆입니다.

그런데도 김 씨는 사고 당시 밭 주변에서 이렇다할 지뢰 표시를 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사고가 일어나고 5달이 지난 시점에도, 취재진이 현장을 찾으니, 나뭇가지에 조그맣게 리본처럼 달아놓은 '지뢰' 라는 표지 외에 이렇다할 철조망 차단 시설을 볼 수 없었습니다.

 

지뢰가 움직인다!

경사면-물길 타고 이동

앞서 올해 4월 4일에는 카자흐스탄 출신 노동자가 땅굴 밑 인삼밭 주변 시냇가에서 지뢰를 밟아 다리에 중상을 입었습니다. 사고 반년 뒤 취재진이 방문한 현장에는 아직도 여전히 시냇가로 통하는 길 군데 군데 붙여놓은 테이프 외는 제대로 된 차단 시설이 없었습니다. 지뢰 유실 위험이 높은 시냇가에는 여전히 언제든지 접근이 가능했습니다.

4월 사고는 땅굴 밑에 집중 설치한 지뢰가 경사면을 타고, 물길을 따라 흘러나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흔히 지뢰는 땅에 박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한국군과 미군의 M14 지뢰는 워낙 가벼워 물에 동동 떠서 쉽게 이동합니다.

 

안보관광 + 외국인 노동자

지뢰 지역 찾는 외지인↑

인근의 파라호나 파주시와 연천군 등지의 임진강에서 끊임없이 유실 지뢰가 발견되는 상황과, 북한 목함 지뢰가 장마철에 남측으로 들어오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사고를 당한 카자흐스탄인은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국내에서 지뢰 사고를 당한 민간인입니다. 취재진은 민통선 안팎의 인삼밭이나 고랭지 채소밭을 방문했을 때, 동남아 인으로 보이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단체로 영농 자원 봉사를 하러 온 외국인 회사 직원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지뢰 지역의 정보를 전혀 모르는 외지인, 특히 외국인들의 출입이 늘면서도 새로운 위험이 대두되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