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 사고 다발 구역은 과거 남방 한계선 근처이거나 군사 전략적 거점이어서 지뢰가 집중적으로 설치된 장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런 장소일수록 버섯과 약초 등이 풍부해 이를 채취하려는 사람들의 은밀한 동선과 겹치게 됩니다. 민통선 지뢰 지대 부근에는 인삼밭과 고랭지 채소밭이 많은데, 일부는 불법 개간의 결과물입니다. 해당 지역의 경사도가 급하고 물길까지 흐르면 유실 위험은 증폭됩니다.
다소 거칠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펀치볼 지뢰 사고의 맥락을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표현해 봤습니다.
지뢰 매설 이력 + 불법 개간과 산나물 채취
+ 유실 가능성 + 군 당국의 수수방관
= 지뢰 사고 위험
가칠봉과 땅굴 아랫자락에서 반세기가 넘게 계속된 지뢰 사고의 비극은 이 지뢰 위험 공식의 변수가 한꺼번에 작용해 일어난 일입니다.
지뢰 사고는 아무 이유 없이 특정 구역에 쏠리지 않습니다. 거기엔 반드시 맥락이 존재하는 법입니다.
매설-개간- 유실 - 방치까지
지뢰 사고의 공식
지뢰 사고 다발 구역은 과거 남방 한계선 근처이거나 군사 전략적 거점이어서 지뢰가 집중적으로 설치된 장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런 장소일수록 버섯과 약초 등이 풍부해 이를 채취하려는 사람들의 은밀한 동선과 겹치게 됩니다. 민통선 지뢰 지대 부근에는 인삼밭과 고랭지 채소밭이 많은데, 일부는 불법 개간의 결과물입니다. 해당 지역의 경사도가 급하고 물길까지 흐르면 유실 위험은 증폭됩니다.
다소 거칠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펀치볼 지뢰 사고의 맥락을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표현해 봤습니다.
지뢰 매설 이력 + 불법 개간과 산나물 채취
+ 유실 가능성 + 군 당국의 수수방관
= 지뢰 사고 위험
가칠봉과 땅굴 아랫자락에서 반세기가 넘게 계속된 지뢰 사고의 비극은 이 지뢰 위험 공식의 변수가 한꺼번에 작용해 일어난 일입니다.
오종0, 오은0
1995년 1월 24일, 삼촌 오종0(40) 씨와 조카 오은0(11) 군은 겨울철 토끼사냥에 나섰다. 산에 들어가 사냥 중 조카 오종0군이 먼저 M14 대인지뢰를 밟았다. 이에 삼촌 오종0 씨가 구조를 시도하던 중 다른 M14 대인지뢰가 폭발해, 두 사람 모두 사망했다. F 지점 지뢰 피해자 오흥0 씨는 이들의 동생이자 아버지다. 오흥0 씨와 오종0 씨의 어머니 박춘0 씨 역시 지뢰피해자다. 3대에 걸쳐 지뢰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사고 위치와 내용은 평화나눔회 자료와 지뢰피해자 지원조사단 조사자료, 가족 1명의 증언을 토대로 했다.
백옥0, 송명0
1993년 10월, 송명0씨와 백옥0(60) 씨는 약초와 나물을 채취하기 위해 산에 진입했다. 나물 채취 중 M16 대인지뢰가 폭발해 송명0씨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백옥0 씨는 시체를 찾지 못해 장례를 치르려던 중 중상을 입은 채 기적적으로 발견됐다. 하지만 이 사고로 백 씨는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사고 위치와 내용은 평화나눔회 자료와 지뢰피해자 지원단 현장조사 자료, 주민 1명의 증언을 토대로 했다.
함범0
1990년대 초, 함범0 (53 추정)씨는 약초와 나물을 채취하기 위해 산행에 나섰다가 M14 대인지뢰가 폭발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시신은 관할 군부대에서 수습했으나, 구체적인 기록은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사고 위치와 내용은 평화나눔회 자료와 주민 1명의 증언을 토대로 했다.
오흥0
1993년 6월 1일, 오흥0(36) 씨는 약초와 나물을 채취하기 위해 산에 진입했다. 중턱 부근에서 M14 대인지뢰가 폭발해 다리를 잃었다. 오 씨는 사고 2년 뒤에는 A지점 지뢰 사고로 형 오종0 씨와 아들 오은0 군을 잃었다. 이후 1996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어머니 박춘0 씨 역시 지뢰 사고 피해자다.
*사고 위치와 내용은 평화나눔회 자료와 가족 1명과 주민 1명의 증언을 토대로 했다. 다만 해당 지역의 지뢰가 산재해 정확한 위치를 측정하지 못하고 추정했다.
제4땅굴
제4땅굴은 1990년 3월 3일 해안면 서북쪽 지점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됐다. 1978년 제3땅굴이 발견된 지 12년 만이었다.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1.2km 떨어진 곳이고, 총 길이는 2km에 달한다. 1992년부터 갱도와 내부를 살펴볼 수 있는 안보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해 평균 10만 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00 존
해안면 지뢰사고 피해자 중 첫 외국인 피해자다. 카자흐 스탄 출신의 00 존 (54() 씨는 지난 4월 4일 인삼밭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일했다. 존 씨는 쉬는 시간 바로 옆 개울가에 갔다가 물을 따라 흘러온 M14 대인지뢰를 밟아 한 쪽 다리를 잃었다.
*사고 위치와 내용은 사고 보도자료와 평화나눔회 자료, 사고위치 표지판, 주민 1명의 증언 등을 토대로 했다.
김옥0
1995년 6월 13일, 김옥0 (59)씨는 약초와 나물을 채취하기 위해 산행에 나섰다. 나물 채취 중 다리를 헛디뎌 미끄러졌고, 엉덩이 부근에서 M14 대인지뢰가 폭발했다. 이 사고로 김 씨는 엉덩이뼈 부상을 입었다. 현재는 개간이 이뤄져 사고장소가 밭으로 변했다.
*사고 위치와 내용은 평화나눔회 자료와 지뢰피해자 보상신청자료, 가족 1명과 주민 1명의 증언을 토대로 했다.
A
B
C
F
제4땅굴
D
E
제4땅굴 :
숨겨둔 지뢰가 불러온 죽음
제4땅굴의 밑자락에는 1990년대 사고 지점 3곳이 골짜기를 따라 연이어 지도상에 찍혀 있습니다. A 지점에서는 41살 삼촌과 12살 조카가 토끼를 잡으러 들어갔다가 함께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뢰를 먼저 밟은 조카를 구하려던 삼촌의 발밑에서도 또 다른 지뢰가 터졌습니다. 소년의 아버지이자 삼촌의 남동생인 또다른 남성은 F 지점에서 역시 지뢰 사고로 다리를 잃었습니다. 형제의 어머니는 펀치볼 남서쪽 야산에서 역시 지뢰를 밟았습니다. 3대에 걸친 비극이었습니다.
B, C, E 지점 역시 모두 90년대 초반에서 중반 사이 민간인이 지뢰로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은 위치입니다. 마을 아낙네 2명이 함께 산나물을 캐다가 동시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1명은 현장에서 숨지고, 다른 1명은 실종됐다가 마을 주민들이 장례식을 치르려던 사흘 뒤에야 중상을 입은 채 기적적으로 발견됐습니다.
약초를 캐러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한 또 다른 50대 남성의 시신은 사고를 당한 뒤 며칠 뒤에야 군 헬기가 가까스로 발견했습니다. 군도 지상에서는 수색하기 어려운 미확인 지뢰지대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모두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대부분의 사고 당사자와 가족들은 사고 당시 주변에 지뢰 표시는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도상의 원에
커서를 대면
자세한 사고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제4땅굴이 발견된 것은 1990년 3월, 주민들은 땅굴이 발견되기 전에는 아래편 숲이 수시로 나무를 하러 들어가던 안전한 곳이었으며 지뢰는 없었다고 증언합니다.
하지만 땅굴 발견 뒤에 북한군의 침투에 대비해 군부대가 지뢰를 집중적으로 매설했고, 특히 발목지뢰로 불리는 M14 대인 지뢰가 대량으로 뿌려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이 사실을 몰랐거나, 알고도 위험을 무릅쓰고 숲속에 나물 채취나 사냥, 고철을 주우러 들어간 주민들이 90년대 중반에 끊임없이 사고를 당했습니다. 실제로 땅굴 밑에서 일어난 지뢰 사고는 모두 90년대 이후에 발생했습니다.
우리는 땅굴 밑뿐 아니라 금강산 일만이천 봉의 마지막 봉우리인 가칠봉 자락 밑에 만들어진 또 다른 지뢰 사고 라인도 주목합니다. 산 경사면의 길을 따라 9부 능선에서 3부 능선까지 3 ~ 4개의 사고 지점(L ~ N)이 선을 따라 연결됩니다.
지뢰는 적의 이동을 차단하기 위해 전방의 도로나 산길을 따라 주변의 우회로에 집중적으로 매설합니다. 숲속 산길 주변과 골짜기를 따라 지뢰 사고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칠봉 :
지뢰 경계 없는 밭과 산
지도상의 원에
커서를 대면
자세한 사고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김재0, 김천0, 김철0, 윤태0
1966년 5월, 모내기 자금이 필요했던 30대 가장 4명은 탄피와 같은 고철을 수집하기 위해 산에 진입했다. 당시 하루 종일 산에서 고철을 주우면, 한 포대 정도를 모을 수 있었는데 이는 4인 가족의 2주 생활비에 달하는 큰 돈이었다. 하지만 M14 대인지뢰가 폭발해, 김철0 씨와 윤태0 씨는 사망했고, 김재0 씨와 김천0 씨는 전신에 창상을 입었다.
*사고 위치와 내용은 평화나눔회 자료와 지뢰피해자 지원단 현지 조사자료, 가족 1명의 증언을 토대로 했다.
가칠봉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로, 가칠봉을 더해야(加) 금강산이 '일만이천봉'이 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높이 1,242m로 남북 모두 관측 등에 주요한 지점이고, 금강군-원산으로 이어지는 교두보이기 때문에 6.25 전쟁 당시 6번이나 그 주인이 바뀐 산이다. 1951년 10월 14일 40일간의 전투 끝에 국군 제5사단이 수복했다.
신광0
1984년 7월 10일, 신광0(47) 씨는 가칠봉 하단 비교적 평평한 목초지에서 소를 방목했다. 소에게 먹일 풀을 더 뜯어오기 위해 수풀에 들어갔던 신 씨는 M14 대인지뢰를 밟아 한 쪽 다리를 잃었다. 이후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키우던 소를 모두 처분해야 했다.
*사고 위치와 내용은 평화나눔회 자료와 가족 1명, 주민 1명의 증언을 토대로 했다.
최중0
1993년 5월 1일, 최중0(69) 씨는 두릅을 채취하기 위해 산행에 나섰다. 채취 중 M14 대인지뢰가 폭발했고, 다음날 발견됐을 때는 과다출혈로 사망한 상태였다.
*사고 위치와 내용은 평화나눔회 자료와 지뢰피해자 보상신청 자료, 가족 1명과 주민 1명의 증언을 토대로 했다.
김석0
가장 최근에 발생한 사고다. 지난 5월 22일 김석0(42) 씨는 고사리를 채취하기 위해 산에 진입했다가 M14 대인지뢰가 폭발해 한 쪽 발을 잃었다.
*사고 위치와 내용은 사고 보도자료와 피해자 증언, 관할 군부대의 조사 자료를 토대로 했다.
변0묵
1984년 12월 23일, 땔감을 구하기 위해 변0묵(52) 씨는 산을 향했다. 낮은 돌담을 넘어 입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M14 대인지뢰가 폭발해 사망했다.
*사고 위치와 내용은 평화나눔회 자료, 지뢰피해자 보상 신청자료, 가족 2명의 증언을 토대로 했다.
강춘0
1983년 8월 3일, 강춘0(53) 씨는 산에 진입했다가 미상의 지뢰가 폭발해 한 쪽 다리를 잃었다. 강 씨의 사고 장소는 현재 개간이 이뤄져, 밭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사고 위치와 내용은 지뢰피해자 보상 신청자료와 가족 1명, 주민 1명의 증언을 토대로 했다.
김종0
1976년 11월 30일, 김종0(17) 씨는 땔감을 구하기 위해 친구들과 여럿이 산행에 나섰다. 평소 자주 나무를 하던 곳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던 김 씨. 하지만 M14 대인지뢰가 폭발해, 한 쪽 다리를 잃었다.
*사고 위치와 내용은 피해자 증언과 평화나눔회 자료, 지뢰피해자 보상 신청자료를 토대로 했다.
김은0
2009년 10월 9일, 김은0(54) 씨는 약초와 나물을 채취하기 위해 산에 진입했다. 채취 중 M14 대인지뢰가 폭발해 한 쪽 다리를 잃었다. 이후 국가를 상대로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했지만, 대법원 판결결과 패소했다.
*사고 위치와 사고 내용은 평화나눔회 자료와 지뢰피해자 보상 신청자료, 119구조 자료, 피해자 증언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했다.
L
가칠봉
N
G
H
I
K
M
J
최근 지뢰 사고는 산과 밭, 특히 인삼밭의 경계에서 발생하고 있다.
00 존 씨의 사고 장소에만 표지판이 서있을 뿐 유실지뢰에 대한 안전 조치는 없다.
00 존 씨가 사고당한 개울가는 여전히 접근이 어렵지 않다.
김석0 씨 사고당시 구조사진 / 출처 : 강원 춘천소방서
김석0 씨 사고지점에서 200m만 벗어나도 작게 걸린 지뢰표지가 전부다.
좌측의 김석0 씨 사고 지점 인근은 여전히 밭과 산 사이에 별다른 경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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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지뢰 사고 지점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가칠봉 자락과 땅굴 밑 산악지대에 인접한 인삼밭이 그곳입니다.
올해 일어난 4월과 5월 지뢰 사고는 모두 인삼밭 부근에서 일어났습니다. D 지점과 H 지점이 그곳입니다. 최근까지 일어나고 있는 지뢰 사고의 전형적인 유형이 확인됩니다.
바로 밭과 숲의 경계지점입니다. 5월 22일에 지뢰 사고를 당한 외지인 김 모씨는 밭 경계를 걸어가면서 나물을 캐다가 지뢰를 밟았습니다. 32년 전에 한 주민이 땔감을 구하러 숲으로 진입하려다가 화를 당한 장소(I 지점) 바로 옆입니다.
그런데도 김 씨는 사고 당시 밭 주변에서 별다른 지뢰 표시를 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사고가 일어나고 5달이 지난 시점에도, 현장에서 약 200m만 걸어가도 나뭇가지에 작게 리본처럼 달아놓은 '지뢰' 라는 표지 외에 이렇다 할 철조망 차단 시설을 볼 수 없었습니다.
지뢰가 움직인다!
경사면-물길 타고 이동
앞서 올해 4월 4일에는 카자흐스탄 출신 노동자가 땅굴 밑 인삼밭 주변 시냇가에서 지뢰를 밟아 다리에 중상을 입었습니다. 사고 반년 뒤 취재진이 방문한 현장에는 아직도 여전히 시냇가로 통하는 길 군데 군데 붙여놓은 테이프 외는 제대로 된 차단 시설이 없었습니다. 지뢰 유실 위험이 높은 시냇가에는 여전히 언제든지 접근이 가능했습니다.
4월 사고는 땅굴 밑에 집중 설치한 지뢰가 경사면을 타고, 물길을 따라 흘러나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흔히 지뢰는 땅에 박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한국군과 미군의 M14 지뢰는 워낙 가벼워 물에 동동 떠서 쉽게 이동합니다.
인근의 파라호나 파주시와 연천군 등지의 임진강에서 끊임없이 유실 지뢰가 발견되는 상황과, 북한 목함 지뢰가 장마철에 남측으로 들어오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사고를 당한 카자흐스탄인은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국내에서 지뢰 사고를 당한 민간인입니다. 취재진은 민통선 안팎의 인삼밭이나 고랭지 채소밭을 방문했을 때, 동남아 인으로 보이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단체로 영농 자원 봉사를 하러 온 외국인 회사 직원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지뢰 지역의 정보를 전혀 모르는 외지인, 특히 외국인들의 출입이 늘면서도 새로운 위험이 대두되고 있는 셈입니다.
YTN 데이터저널리즘팀 I 취재기자 : 함형건 김수진 I 리서처 : 권오은 I 디자이너 : 나예진 유영준 I 촬영기자 : 이상엽
도움을 주신 분들 I 한국지뢰제거연구소 김기호 소장 I 지뢰문제 활동가 정인철 I 사단법인 평화나눔회
I 국방부 지뢰피해자지원단 I 서정호씨 등 해안면 주민들
문의 I hkhahm@ytn.co.kr
또 다른 지뢰 사고 지점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가칠봉 자락과 땅굴 밑 산악지대에 인접한 인삼밭이 그곳입니다.
올해 일어난 4월과 5월 지뢰 사고는 모두 인삼밭 부근에서 일어났습니다. D 지점과 H 지점이 그곳입니다. 최근까지 일어나고 있는 지뢰 사고의 전형적인 유형이 확인됩니다.
바로 밭과 숲의 경계지점입니다. 5월 22일에 지뢰 사고를 당한 외지인 김 모씨는 밭 경계를 걸어가면서 나물을 캐다가 지뢰를 밟았습니다. 32년 전에 한 주민이 땔감을 구하러 숲으로 진입하려다가 화를 당한 장소(I 지점) 바로 옆입니다.
그런데도 김 씨는 사고 당시 밭 주변에서 별다른 지뢰 표시를 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사고가 일어나고 5달이 지난 시점에도, 현장에서 약 200m만 벗어나도 나뭇가지에 조그맣게 리본처럼 달아놓은 '지뢰' 라는 표지 외에 이렇다 할 철조망 차단 시설을 볼 수 없었습니다.
지뢰 사고는 아무 이유 없이 특정 구역에 쏠리지 않습니다. 거기엔 반드시 맥락이 존재하는 법입니다.
지뢰 사고 다발 구역은 과거 남방 한계선 근처이거나 군사 전략적 거점이어서 지뢰가 집중적으로 설치된 장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런 장소일수록 버섯과 약초 등이 풍부해 이를 채취하려는 사람들의 은밀한 동선과 겹치게 됩니다. 민통선 지뢰 지대 부근에는 인삼밭과 고랭지 채소밭이 많은데, 일부는 불법 개간의 결과물입니다. 해당 지역의 경사도가 급하고 물길까지 흐르면 유실 위험은 증폭됩니다.
다소 거칠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펀치볼 지뢰 사고의 맥락을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표현해 봤습니다.
지뢰 매설 이력 + 불법 개간과 산나물 채취
+ 유실 가능성 + 군 당국의 수수방관
= 지뢰 사고 위험
가칠봉과 땅굴 아랫자락에서 반세기가 넘게 계속된 지뢰 사고의 비극은 이 지뢰 위험 공식의 변수가 한꺼번에 작용해 일어난 일입니다.
지도상의 원에
커서를 대면
자세한 사고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