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볼은 한국전 당시 격전지 중의 격전지입니다. 한국군과 미군, 북한군 등 수만 명이 전사한 처절한 전투의 현장이죠.

펀치볼 바로 옆에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후반부 전투 장면의 무대인 '피의 능선'이 자리하고 있기도 합니다. 가칠봉과 펀치볼 분지 등에서 양측이 뺏고 빼앗기는 혈투를 벌인 이유는 펀치볼 일대가 동부전선의 전략적인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곳에 지뢰가 집중적으로 매설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국군은 휴전 이후에도 펀치볼의 주요 능선 주변과 유사시 적의 예상 이동 경로에 지뢰를 매설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YTN 데이터 저널리즘팀의 지뢰 피해 지도에서 펀치볼 동편의 이른바 '물골' 주변 숲에서 사고지점이 조밀하게 나타난 점도 이와 연관성이 있습니다. 펀치볼을 거쳐 인제 쪽으로 향하는 통로의 길목이어서 전시에 적의 이동을 차단하기 위한 지뢰를 집중적으로 묻은 것으로 보입니다.

분단 65년의 유산 :

대인지뢰

숲의 남쪽편인 무밭 근처 수풀에서도 과거에 민간인 4명이 화를 당했습니다.

주민 서정호 씨는 지금부터 50여년 전 14살 때 이 밭 근처에서 고철인 줄 알고 지뢰를 주워 집에 가져갔다가 터져 한쪽 손과 다른 손의 손가락 마저 잃었습니다. 서 씨 사고 이후에도 부근 숲에서 연이어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반세기가 지났지만, 놀랍게도 상황은 별로 달라진 게 없습니다. 주민들은 이곳을 펀치볼에서 지뢰가 가장 많은 곳 중 한 곳으로 지목하지만 군은 이곳에서 제대로 된 지뢰 제거를 한 적이 없습니다. 사방을 철저히 차단해야 할 미확인 지뢰지대를, 둘레길 쪽만 일부 관리하고, 반대편은 나 몰라라 내버려 둔 것입니다.

한국지뢰제거연구소 김기호 소장이 해당 무밭에서 약 20m 들어간 지점에서 지뢰 탐사를 시작하자 지뢰가 연속으로 발견됐습니다. M2 금속  대인지뢰와 M27 대전차 지뢰가 폭 2미터 열을 형성하여 매설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원을 클릭하시면

자세한 사고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물골 : 반쪽짜리 차단시설

둘레길 코스인 먼 멧재길을 따라 물골 숲으로 들어가면 길 양편으로 3명이 사망한 지뢰 사고 지점들이 나옵니다.

철조망 덕분에 숲으로 진입은 차단되어 있지만 수십미터만 둘레길 입구 쪽으로 거슬러 내려오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누군가에 의해 철조망은 끊어져 있고, 지뢰밭과 밭 사이는 뻥 뚫려 있습니다. 과거에 설치한 경계 차단 시설이 물길에 스러져버려 형체를 알 수 없는 상태로 방치된 구간도 있습니다.

인터랙티브 지도를 통해

지뢰 안전 미비지점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패턴은 마지막 관심 구역인 펀치볼 남서쪽 야산에서도 반복해 드러납니다. 겉으로 보기엔 평온하기 만한 과수원. 하지만 불과 수십 미터 떨어진 야산은 온통 지뢰 매설 의심 구역입니다. 단 한 개의 지뢰 표지판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주민은 지뢰를 취재하고 있다는 말에 이내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절대 인근 숲으로는 들어가지 마세요. 부근에서 수도 없이 지뢰를 만났습니다."

지뢰 탐사 경험이 많은 활동가인 정인철 씨와 김기호 소장의 안내로 수십미터 올라간 산자락에 위치한 한 묘지로 올라갔습니다. 주민들이 버섯과 도토리, 나물을 뜯으러 다니는 데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길 흔적이 숲쪽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김기호 소장이 지뢰 탐지기를 들고 들어간지, 30여 분만에, 뇌관이 생생히 살아있는 대인 지뢰 두 종류와 대전차 지뢰가 2m 폭으로 묻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숲은 주민 2명이 지뢰를 만나 중상을 당한 구역입니다.

문제의 야산 반대편에는 자전거 도로가 지나갑니다. 그쪽만 차단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사과 농장과 묘지 쪽 방향은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민간인 지뢰 사고가  나기까지는 대부분 주민이 지뢰가 고밀도로 매설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구역입니다.

취재진은 수풀 속에서 지뢰 지대 표지판 하나를 겨우 찾았지만, 99%가 녹으로 뒤덮여 무슨 말이 써 있는지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오랜 세월 방치된 모습이었습니다.

남서쪽 야산 :

과수원, 묘지 그리고 지뢰밭

관할 군 부대는 YTN의 지뢰 발견 신고가 있고 나서야 철조망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차단시설 설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취재진은 주민들로부터 일부 구역에서는 과거에는 철조망 차단시설이 있었지만, 고철로 수집해 돈과 바꾸려고 몰래 수거해가는 사람들 때문에 없어진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철조망을 끊고 들어가 나물을 채취하거나 불법 개간을 한 흔적도 곳곳에서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지뢰 위험 관리의 최종 책임은 군 부대에 있고, 가장 비인도적인 무기라는 대인 지뢰를 대량으로 매설하고 방치한 주체도 군 당국입니다. 그런 군 부대가 민간인 거주 구역 곳곳에 상존하는 지뢰 사고의 위험을 외면하고 있음을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같은 문제의 근원에는 군사적인 효용성도 떨어지는 미확인지뢰지대를 그대로 유지하는 군 당국의 태도가 있습니다. 과거 지뢰 사고에 관한 상세한 기록도 없고, 민간인 안전에 대한 관심도 부족하며, 체계적인 지뢰 제거 계획도 없는 군 당국의 편의주의가 낳은 결과입니다.

無관심, 無기록, 無대책

YTN 데이터저널리즘팀  I  취재기자 : 함형건 김수진   I   리서처 : 권오은  I   디자이너 : 나예진 유영준  I   촬영기자 : 이상엽

도움을 주신 분들  I  한국지뢰제거연구소 김기호 소장  I  지뢰문제 활동가 정인철  I  사단법인 평화나눔회

                                   국방부 지뢰피해자지원단  I  서정호씨 등 해안면 주민들

문의   I    hkhahm@ytn.co.kr

                       국방부 지뢰피해자지원단서정호씨 등 해안면 주민들

도움을 주신 분들한국지뢰제거연구소 김기호 소장지뢰문제 활동가 정인철사단법인 평화나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