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펀치볼(Punch Bowl)로 알려진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은 역설의 땅입니다. 방문객의 눈을 사로잡는 빼어난 풍광 뒤에는 국내 대표적인 지뢰 피해지역이란 고통스러운 기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땅 밑에는 수많은 지뢰가 유령처럼 도사리고 있고 민간인이 자유롭게 거주, 왕래하는 지금도 그 위험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오목하게 파인 분지를 둘러싼 산악지역은 모두 지뢰 지대로 간주됩니다. 여의도 면적의 3.9배에 달하는 넓이입니다. 대부분은 군 당국도 정확한 지뢰 매설 위치를 모르는 미확인 지뢰지대입니다.

1960년대 이후 펀치볼에서 지뢰로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친 민간인은 40명이 넘습니다. 사고는 한순간이지만, 그 상처는 본인과 가족의 삶을 뿌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그들 모두가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생활고 등 삼중고에 시달려온 우리 사회의 가장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이런 비극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긴요한 정보가 있습니다. 바로 60여 년 동안 누적되온 지뢰 사고의 위치 정보입니다. 미확인 지뢰지대의 위험도와 실체를 밝히는 중요한 열쇠가 될 이 정보에 대해 군 당국은 무관심합니다.

역설의 땅 펀치볼,

위험과의 동거

지뢰라는 유령

그리고 미완성 지도

YTN 데이터 저널리즘 팀은 지뢰 위험의 수수께끼를 풀 퍼즐 조각들, 사라져가는 기억의 편린들을 추적했습니다. 토박이 주민들의 머릿 속에 남은 지뢰 사고의 기억과 피해자 본인이나 가족들의 증언을 수집했습니다. 가능하면, 현장에서 GPS로 경위도 좌표를 확인해 데이터로 정리했고, 수십년 전 군 헌병대 조사 보고서도 열람했습니다.

이렇게 현장 취재와 주민 인터뷰, 문헌 조사를 통해 35명 희생자의 사고 위치를 파악해 국내 최초의 지뢰 피해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남아있는 기록이 부족해 전체 사고를 담지는 못한 미완성 지도이지만, 65년간에 걸친 이 지역 지뢰 피해의 큰 그림을 파악하기엔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민간인 지뢰 사고의 법칙

가칠봉·제4땅굴 지역과 물골 지역의 희생자 26명은 사고 위치가 파악된 전체 35명의 74%에 해당합니다. 참고로, 희생자 수가 아닌 지뢰 사고 건수로 따지거나, 현재는 지뢰 지대가 아닌 개간지에서 과거에 사고가 난 경우를 제외하는  방법으로 다르게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두 구역의 사고 비율은 전체의 71% ~ 80%의 범위로 계산됩니다.

이 지뢰 사고 집중 구역의 면적은 해안면 주변 지뢰 매설 추정 영역의 21.1%에 해당합니다. 펀치볼 지역은 불규칙한 타원형이긴 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영역을 링 형태로 단순화해서 볼 수 있습니다. 문제의 두 구역은 링을 10개 부분으로 나누었을 때 이 중 2조각에 해당하는 영역입니다. 전체 지뢰 사고의 70~80%가 지뢰 의심 영역의 20% 내외에서 발생한 셈입니다.

다른 지역에 대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지만, 펀치볼 지뢰 피해 실태는 지뢰 사고가 특정 구역에 몰렸다는 점에서 이른바 *파레토의 법칙으로 그 패턴을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당장 모든 지뢰 구역의 지뢰를 제거하거나, 경계 표지를 철저히 관리하는게 어렵다면, 몇몇 구역부터라도 우선순위를 정해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인터랙티브 지도를 살펴보면, 유난히 사고 위치가 조밀하게 나타나는 구역이 있습니다. 북서쪽의 제4 땅굴과 가칠봉 아랫자락과 인제 쪽으로 빠지는 길목인 물골이 그곳입니다. 각각 19명과 7명이 지뢰로 목숨을 잃거나 팔·다리를 잃었습니다.

펀치볼 사방이 지뢰 매설 추정 지대이므로, 지뢰 사고 지점도 동서남북에 고르게 퍼져 나타날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 예상을 깨고 유달리 사고가 자주 나는 구역, 즉 지뢰 사고의 핫 스폿(Hot Spot )이 존재하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인터랙티브 지도를 통해

자세한 지뢰 사고 정보를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위험도 최고·관리 시급 지역

            위험·관리 필요 지역

펀치볼은 지도의 3개 구역이 지뢰 제거작전이 먼저 필요한 구역으로 보입니다. 공통으로 지뢰 사고는 잦고, 실제 지뢰가 다량 발견되지만, 지뢰 표지와 차단 시설이 허술한 구역입니다.

과일 농장과 채소밭, 도로 등 주민 생활권과 밀착된 2번 구역과 3번 구역은 지뢰 제거가 시급해 보였습니다. 사고가 가장 잦았던 1번 구역은 상대적으로 면적이 넓습니다. 경작지와 산기슭 진입구에 차단 철조망을 철저히 설치하고 군 작전에 불필요한 부분부터 단계적으로 제거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북동쪽의 월산령은 숲속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길어서 다른 구역보다 접근성은 떨어지는 편이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사고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곳 역시 민간인 지뢰 사고가 3번 이상 일어난 곳이어서 위험  관리에서 제외할 수는 없습니다.

펀치볼은 법적으로는 민간인 출입통제선 이내에 있지만, 실제로는 검문소 통과 없이 누구나 다닐 수 있는 특이한 지역입니다. 사실상 펀치볼의 대부분은 민통선이 해제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구역입니다.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펀치볼 지뢰 사고 상당수는 실질적인 민통선은 북상했지만, 지뢰 위험을 방치해 생긴 관리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했습니다.

지뢰 제거 489년 소요?

해법은 있다

현재 군부대의 방식으로 국내 접경지대의 지뢰를 모두 제거하려면 489년이 걸린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좀 더 현실적 해법을 찾아가야 합니다. 현재 군의 지뢰 지대 관리는 모눈종이에 매설 지점을 표시하는 아날로그식 관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군이 일부 지역에 대해 보유하고 있다는 지뢰 매설 도의 정확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불확실합니다. 다만 활용 가능한 모든 자료를 통합하고, 지뢰 관리 방식을 지리정보시스템(Geographic Information System)을 통해 디지털화해 나가야 합니다.  과거 지뢰 사고 위치를 파악하고 현장 조사를 통해 컴퓨터 기반의 공간 분석을 하는 것입니다. 주먹구구식의 기존 관리법 만으로는 무고한 시민들이 생명과 팔다리를 잃는 사고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지뢰 지대는 언젠가는 다가올 통일 한국에도 큰 장애물로 남게 될 공산이 큽니다. 할 수 있는 부분부터 찾아 불필요한 미확인 지뢰지대는 적극적으로 줄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접근법이 지뢰 위험 관리와 안보에도 부담을 더는 현명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YTN 데이터저널리즘팀  I  취재기자 : 함형건 김수진   I   리서처 : 권오은  I   디자이너 : 나예진 유영준  I   촬영기자 : 이상엽

도움을 주신 분들  I  한국지뢰제거연구소 김기호 소장  I  지뢰문제 활동가 정인철  I  사단법인 평화나눔회

                                   국방부 지뢰피해자지원단  I  서정호씨 등 해안면 주민들

문의   I    hkhahm@ytn.co.kr

                       국방부 지뢰피해자지원단서정호씨 등 해안면 주민들

            위험도 최고·관리 시급 지역

            위험·관리 필요 지역

도움을 주신 분들한국지뢰제거연구소 김기호 소장지뢰문제 활동가 정인철사단법인 평화나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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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펀치볼(Punch Bowl)로 알려진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은 역설의 땅입니다. 방문객의 눈을 사로잡는 빼어난 풍광 뒤에는 국내 대표적인 지뢰 피해지역이란 고통스러운 기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땅 밑에는 수많은 지뢰가 유령처럼 도사리고 있고 민간인이 자유롭게 거주, 왕래하는 지금도 그 위험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속이 푹 파인 분지를 둘러싼 수풀과 산악지대는 모두 지뢰 지대로 간주됩니다. 해안면의 절반인 여의도 면적의 3.9배에 달하는 영역이 지뢰 매설 추정 구역입니다. 대부분은 군 당국도 정확한 지뢰 매설 위치를 모르는 미확인 지뢰 지대.

1960년대 이후 펀치볼에서 지뢰로 사고를 당한 민간인은 4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올해도 민간인 2명이 지뢰를 밟아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 희생자들은 모두 생활이 불편한 우리 사회의 가장 소외된 이웃이기도 합니다.

반세기가 넘게 누적된 지뢰 사고의 위치는 미확인 지뢰지대의 실체를 밝히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열쇠에 대해 군 당국은 무관심합니다.

            위험도 최고·관리 시급 지역

            위험·관리 필요 지역